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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가 이야기한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루소는 타락이 일어나기 전의 성향을 가리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였고, 이 본성에 따른 교육을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점이 제기된다. 첫째는, 루소가 이야기한 타락에 관한 의문이다. 루소에 의하면, 우리는 감각을 사용하는 존재로 태어나,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에 의해 일종의 성향을 갖게 된다. 루소는 이 성향이 습관에 의해 제한받고, 의견의 영향으로 타락된다고 묘사하였는데, 이것을 과연 타락이라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루소가 저술한 바와 같이, 인간은 감각기관을 타고난 존재로, 감각기관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이를 통해 학습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없이는 교육도, 성장도 불가능한데, 왜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은 무시하고 타락으로 일반화하여 표현하였는지 의문이 들었다.

 

        두 번째 의문은 왜 루소는 인간 본성을 선하다고 보았는가이다. 루소는 인간 본성을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보며, 이에 기초한 교육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어 의문이 남는다. 단순히 신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물을 선하게 창조하였다는 종교적인 믿음에 기초한 것인지 하는 궁금증이 든다.

 

        다음으로는 에밀 전반에 드러난 모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루소는 인간의 본성을 우선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한 교육을 주장하였다. 동시에 훌륭한 사회제도란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탈바꿈 시키는 제도를 말합니다(66)’에서와 같이 자연인의 위상을 제거하고 공동체를 위한 교육을 행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여, 이 부분이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만약 루소가 이 부분에서 의미한 것이 무분별하게 본능적인 충동에만 따르는 사람을 가장 잘 탈바꿈 시키는 것을 의미하였다면 이 점에는 크게 동의한다. 인간이 본능과 충동에만 의지하여 행동한다면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소는, 앞서 인간의 본성을 교육의 원천이자 기준으로 언급하였으면서 왜 이 부분에서는 반대로 공공교육을 강조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루소가 이야기한 본성은 단순한 본능과 충동과 같은 억눌러야 할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탈바꿈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을까?

 

        위 논의의 연장선으로, 루소가 이야기한 본성과 사회제도의 대립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루소는 문명의 질서에 따른 사람을 시민’, 본성으로부터 오는 정서에 따른 사람을 인간으로 구분하여 칭하며 그 둘을 대립시켜 표현하였다. 그러면서 문명 공동체에 속해있으면서도 본성으로부터의 정서를 고집할 경우, 인간도 시민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인간이 하고 싶은 대로만, 그 정서에만 충실하여 살아간다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루소가 이 둘을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 친구와의 우정, 연인과의 사랑의 감정 등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적 욕구 또한 우리의 근본적인 본성에 속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루소가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의문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