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교과 교육은 어떻게 정당화 되는가- 피터즈와 듀이의 교육관을 중심으로

        교과 수업 시간 중 이 과목은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아이들에게 심심치 않게 나온다. 단순히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의 불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교과를 지도하는 교사로서 교과의 가치를 이해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꼭 필요한 질문이다. 본 논평에서는 교과 교육의 가치는 무엇에 있는가에 대해 듀이와 피터즈의 교육관을 적용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피터즈는 교육의 정의에 대해 반드시 충족시켜야 할 준거들을 언급하며(210), 교육은 가치 있는 것들을 전달하는 과정임을 이야기하였다. , 피터즈에 의하면 교육은 유용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 아니라 내재적 가치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내재적 가치는 공적 전통에의 입문으로(197) 우리가 태어났을 때에는 가지고 있지 않은, 조상들이 축적, 발전시켜온 문화적 성취를 의미한다(224). 피터즈는 한 개인이 공동체가 축적해온 산물인 전통 속으로 입문하는 과정 자체를 교육으로 보았다(225). , 피터즈의 교육관에 따르면 교과 교육은 그 자체로 내재적인 가치를 지닌다. 교과라는 것은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의 선조들이 경험적으로 쌓아온 것들 중 가치로운 내용을 요약, 재구성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피터즈의 입장에서 볼 때, 그 공동체적 전통을 학습하는 것 만으로도 교과 교육은 선험적 정당성을 지닌다.

반면 듀이는 피터즈와 상이한 교육관을 취하였다. 피터즈가 내재적 가치를 강조하였다면, 듀이는 실용적(도구적)인 교육으로서의 외재적 가치를 강조하였다. 듀이는 실생활과 연계된 교육을 강조하며, 교육은 삶에 유용한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가치로운 것이라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다. 듀이의 교육관에 따르면, 교과는 실생활에 유용한 결과를 낳을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현대 교과에 대해, 만약 삶과 큰 연관이 없고 아동이 교과가 삶에 가지는 의의를 체감하지 못한다면 듀이는 그 교과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피터즈와 듀이의 교육관에 대한 비판점을 제기해 보자면, 피터즈의 입장에서 교과는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절대적인 것인 교육 내용이 된다. 이러한 교육관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교육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 피터즈의 주장대로 개인이 공동체가 쌓아온 문명과 전통을 학습하는 것이 가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교육은 단순한 공동체 전통에의 입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의 상황과 현재의 삶에 따라 적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그 공동체적 가치에만 주목한다면, 그 사회는 발전 없이 사회의 악습을 답습하는 문제점, 실제 삶과는 동떨어진 교육의 문제점을 야기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필자는 실용성이라는 듀이의 교육관이 전통에로의 입문이라는 피터즈의 교육관에 비해서는 교육을 정당화하는 데에 있어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듀이의 교육관을 따랐을 때 역시 유용한 결과를 낳는 교육만이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점을 낳는다. 도구적 효용성을 넘어, 아이들이 꼭 배워야 할 사회화 과정이라는 윤리적인 쟁점을 경시하였다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또한 피터즈와 듀이의 교육관에 대해 공통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비판점은, 두 학자의 교육관 모두 해당 교과의 내 용이 진리에 부합하는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피터즈는 내재적 가치에, 듀이는 그 교육이 가져오는 외재적 가치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두 교육관에서 모두 교육 내용의 진리 여부는 경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교과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어느 한 측면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피터즈가 이야기한 선험적 가치, 듀이가 주장한 실용성, 교과 내용의 진리 등 다양한 방향으로 모두 교육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교육의 정당성과 그 역할이 사회 속에서 인정받을 때, 우리 교육이 더 지지 받고,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